논문 리뷰 핀치 & 바이커, 사실과 인공물의 사회적 구성 2018/10/05 11:31 by 아콩카구아

트레버 핀치와 위비 바이커의 1984년 논문인 "The Social Construction of Facts and Artefacts: Or How the Sociology of Science and the Sociology of Technology Might Benefit Each Other"(사실과 인공물의 사회적 구성: 혹은 과학사회학과 기술사회학은 어떻게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을 소개합니다.

저는 이 논문을 트레버 핀치, 위비 바이커 (송성수 옮김), 「자전거의 변천과정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해석」 이라는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원문과 번역문은 구글에서 검색하면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핀치와 바이커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 통합적 사회구성주의 접근법을 제안하기 위해 살펴봐야할 여러 논점들을 개관하면서 기존 문헌을 검토
  2. ‘통합적 관점’의 기원이 되는 두 가지 접근법, 즉 ‘경험적 상대주의 프로그램’(EPOR)과 ‘기술의 사회적 구성’(SCOT)을 논의
  3. 두 가지 접근법을 결합시키면서 경험적 사례를 제공
  4. 이 프로그램을 유익하게 추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결론

이 글은 핀치와 바이커가 과학과 기술에 대한 통합적인 사회구성주의 접근법을 제안하기 위해 쓴 논문입니다. 이를 위해 과학학과 기술학에 관련된 세 가지 영역, 즉 과학사회학, 과학과 기술의 관계, 기술학 문헌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선 과학사회학과 관련해서 저자들은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만을 다룹니다. 즉 제도로서의 과학[과학자들의 규범, 경력 패턴, 보상 구조 등]이 아닌 과학 연구의 실제 내용[과학적 아이디어, 이론, 실험]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이지요.

1970년대 중반부터 지식사회학은 화학, 물리학,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hard sciences)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블루어는 과학도 다른 지식과 마찬가지로 문화의 일종으로 취급되어야 하며, 과학지식에 접근할 때에도 다른 지식을 분석하는 방법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스트롱 프로그램(strong programme)'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블루어는 신념의 진위에는 ‘공정하게’ 접근해야 하며, 그러한 신념은 ‘대칭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Bloor, 1973). 조금 어려운 말이라서 위키백과의 설명을 가져와보면, "진리로 알려진 지식이든, 거짓이라고 알려진 지식이든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사회구성주의’라 부르는 이러한 접근법은 과학지식을 사회적 구성물로 취급하며, 이는 과학지식이 인식론적으로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학지식은 전체 지식 문화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과학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문헌들 중 저자들이 주목한 것은, 기술이 과학을 응용한다기보다는 순수과학이 기술 발전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입장에서 접근한 연구자들의 논문입니다. 그러나 핀치와 바이커는 과학과 기술의 상호의존성을 측정하려고 했던 연구자들이 과학과 기술 자체가 다양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사회적으로 생산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학과 기술이 정확히 구분 되는 것처럼 생각함으로써 잘못된 문제제기를 했다고 지적합니다.

이와 관련해 기술사학자 에드윈 레이튼(1977)은 “과학과 기술의 구분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라는 추상적 기능 사이의 구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사회학자인 베리 반즈(1982)는 “[과학과 기술] 두 영역의 실천가들은 … 다른 진영의 문화를 부분적으로 흡수하고 활용”하며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과학과 기술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문화로서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자원은 무엇이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경계는 사회적으로 협상되는 문제이며, 명확한 구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핀치와 바이커가 마지막으로 검토하는 기술학 범주에는 혁신 연구, 기술사, 기술사회학 문헌이 포함됩니다. 이 중에서 첫째, 기술 혁신에 대한 연구는 기술의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나머지 모든 요소를 고려하는데, 이는 단순한 ‘선형 모델’로 혁신 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둘째, 기술사 분야 문헌들은 ‘서술적 역사’가 지배적이라는 점과 분석의 비대칭성(실패한 기술혁신을 다루지 않음)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셋째, 기술사회학 영역에서 존스톤과 도시의 연구는 쿤의 패러다임 론에 입각하여 기술적 대상을 분석하지만, 이들 역시 분석의 비대칭성이 문제입니다.

멀케이에 의해 개진된 더 급진적인 사회구성주의적 기술사회학 연구도 있습니다. 멀케이는 거짓 이론이 성공적인 응용의 기초 가 될 수 있다(기술의 성공은 과학지식의 ‘참’과 아무 관련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핀치와 바이커는 멀케이의 결론 역시 부족하다며, 과학지식의 진위가 신념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기존 문헌들을 살펴본 후에, 핀치와 바이커는 과학지식사회학의 ‘경험적 상대주의 프로그램’(EPOR)과 기술사회학의 ‘기술의 사회적 구성’(SCOT) 접근법을 소개하고, 이 둘에 기초하여 과학학과 기술학의 ‘통합적 사회구성주의’ 프로그램을 제안하려 합니다.

먼저 EPOR은 다음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 실험이 한 가지 이상의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해석적 유연성’을 밝힙니다. 즉 특정 실험결과나 과학이론에 대해 관련된 사회집단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해석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2) 논쟁의 종결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논쟁종결기제, closure mechanism)을 분석합니다. 이것은 과학지식의 산출이 사회적 협상과정으로 이루어지는 논쟁종결기제를 통함을 뜻하는 것으로, 사회적 논쟁의 특징을 지닙니다. 3) 종결 메커니즘을 보다 넓은 사회구조와 연결 짓습니다. 과학지식의 산출 과정에서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논쟁의 종결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과학지식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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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 접근법에서는 기술적 인공물의 개발을 변이와 선택이 교대 되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한 가지 예로 핀치와 바이커는 자전거의 발전 과정을 검토합니다. 19세기 중반 행위자 관점에서 자전거의 여러 변종들은 경쟁 관계에 있었는데, 핀치와 바이커는 <Figure 1>처럼 자전거의 발전 과정을 선형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역사의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자전거 발전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 다방향 모델을 채택하고, ‘관련 사회집단’(남성, 여성, 노인 등 사용자 및 ‘자전가 반대자’들)이 제기한 문제와 해결책을 모두 고려하여 이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아래 <Figure 11>과 같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방식의 묘사는 모든 종류의 갈등을 보여줄 수 있고, 기술적 인공물이 안정화되는 정도 또한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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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바이커는 EPOR과 SCOT의 두 가지 접근법을 세 측면에서 연관 짓습니다. 첫째, 과학사회학의 EPOR 접근법이 과학적 발견의 해석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기술사회학의 SCOT 역시 기술적 인공물이 문화적으로 구성되며 해석된다고 주장합니다. 둘째, EPOR과 마찬가지로 SCOT 역시 두 번째 단계에서 논쟁이 종결되어 인공물이 안정되는 ‘수사학적 종결’ 및’ 문제점의 재정의에 의한 종결’ 메커니즘에 대해 논합니다. 셋째, 과학사회학 연구에서는 사회정치적 환경과의 연결을 충분히 분석하지 못했으나, SCOT 설명 모델은 사회집단이 기술적 인공물에 부여하는 의미에 주목하는 진전된 모습 보여줍니다.

핀치와 바이커는 결론에서 이 두 가지 접근법이 유사성을 가지며, 과학지식사회학이 기술사회학 연구에 적절한 시각을 제공해야만 하고, 기술학 역시 기술에 관련된 사회집단을 분석했던 방법을 과학사회학에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과학과 기술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기술적 인공물이나 과학적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즘 '제 4차 산업혁명' 같은 것을 이야기 할 때, 기술이 자기만의 논리만으로 저절로 발전해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보게됩니다. 그렇기에 핀치와 바이커의 이 고전적인 논문을 한 번 쯤은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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